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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박찬호 '말도 잘 던져야'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3. 4. 2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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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3. 08

 

박찬호의 첫 시범경기 등판이 끝났다. 지난 5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이었다. 2이닝 5안타 3실점. 내용이 안 좋았다. 많은 기자들이 텍사스 레인저스 벅 쇼월터 감독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찬호의 투구를 평가해 달라."

 

"오늘 찬호만 못 던진 게 아니다(He wasn't the only one who struggled out there)."

 

"찬호가 앞으로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라이언 드리스, 케니 로저스, 박찬호…. 팀이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Ryan, Kenny, Chan Ho…. I want them to know the team depend on them). "

 

쇼월터 감독은 박찬호를 질책하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내용은 분명 부진한 내용을 꾸짖고 있다. 단지 직접적인 비난을 피하고 있을 뿐. 적당한 은유와 '돌려 말하기'로 박찬호가 못 던졌으며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표현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감독 대부분의 말솜씨는 야구기량만큼이나 원숙하고 능란하다. 무수한 미디어를 상대하고 늘 대중에게 노출돼 있는 그들은 수사(修辭)에도 능하다. 정확한 표현, 그 말이 미칠 영향에 대한 예측,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의 책임 등이 모두 녹아 있다.

 

한편 그날의 투구 내용에 관해 질문을 받은 박찬호의 대답은 어땠을까.

 

"오늘 직구로 승부하려고 했고, 그 점에 대해 만족한다 (I was trying to compete with my fastball, I felt good about that). 한 가지 안 좋은 점이라면 공이 약간 높았다는 것이다(The only thing was the pitches were a little up). 아마 설레었거나 서둘렀거나 그랬던 것 같은데 그건 괜찮다 (May be I was too excited… may be rushed…But that's OK). "

 

그런 대답에 대한 미국 기자들의 평가가 궁금했다. 댈러스 모닝뉴스지의 에반 그랜트 기자에게 물었다. 현지 언론 가운데 박찬호에게 가시 돋친 기사를 자주 쓰기로 국내 팬들에게 이름까지 알려진 기자다.

 

그는 "미국 독자들은 어려서부터 야구 문화에 익숙하다. 성적만 보면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들에게 2이닝 5안타 3실점은 확실히 부진한 내용이다. 그런데 박찬호는 'OK'라고 한다. 이런 부분은 박찬호가 일부 독자들에게 '정직하지 못한' 인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그랜트의 지적처럼 정직하지 않으려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말을 돌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보면 또 그렇게 보일 만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의 말이 이렇게 전달될 수 있는 이유는 문화.관습의 차이라기보다 언어능력(어휘력과 표현력)의 차이일 것이다.

 

이처럼 박찬호의 영어 표현에는 아직 자신의 속 깊은 곳까지를 상대에게 충분히 전달하기에는 모자란 뭔가가 있다. '대세'에는 지장이 없지만 작은 의미를 전달하는 부분에서 그의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현지 언론에서 박찬호가 '손해'를 보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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