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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더 많은 야구 우상을 위하여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3. 5. 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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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2. 22 

 

베이브 루스는 야구선수에게 우상 그 이상의 의미다. 야구라는 종목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출현과 함께 종목 전체의 판도를 바꿔버린 기량과 카리스마가 그에게 있었다. 나중에 태어난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처럼.

 

많은 메이저 리거가 루스를 숭배한다. 그 가운데 가장 드러내놓고 섬기는 선수를 꼽자면 왼손투수 데이비드 웰스다.

 

웰스가 루스에게 보이는 관심은 그의 행동 곳곳에서 드러난다. 웰스가 2001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뉴욕 양키스로 옮겼을 때 그는 루스가 양키스에서 달았던 등번호 3번을 달고 싶어했다. 그러나 3번은 이미 루스를 기념하기 위해 영구결번 상태여서 달 수가 없었다. 그때 웰스가 선택한 번호는 33번이었다.

 

웰스는 또 루스가 양키스 시절 쓰고 뛰었던 오래된 모자를 소장가로부터 비싼 돈에 사들여 그 모자를 쓰고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우람한 덩치나 애주가인 것까지 웰스는 루스를 따랐다.

 

그런 웰스가 올해 한 가지 꿈을 이뤘다. 지난해까지 소속해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팀을 옮겼다. 레드삭스는 '밤비노의 저주'에 나오는 것처럼 루스가 양키스로 트레이드되기 전에 뛰었던 팀이다. 양키스에 이어 또 한번 루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팀으로 옮긴 것이다.

 

그가 레드삭스에 가서 선택한 등번호는 몇번이었을까. '당연히' 3번이었다. 루스의 상징 '3'이 선명히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행복한 웃음 속에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웰스처럼 '우상 따라하기'에 나선 대표적인 선수를 꼽자면 삼성의 박진만일 것이다.

 

고교 때부터 재치있는 유격수로 이름 날렸던 그는 어릴 적부터 우상으로 삼았던 김재박 감독의 현대에 입단해 등번호 7번을 달았다. 현역 시절 김재박의 번호였다. 그리고 김재박이 걸은 길을 제대로 따라갔다.

 

탄탄한 수비와 센스있는 플레이로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유격수가 됐다. 지난해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고 한솥밥을 먹던 사부 김재박과 헤어져 올해부터 삼성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의 등에는 여전히 7번이 적혀 있다.

 

우상이 먼저 걸은 멋진 길을 따라가는 것. 자신의 꿈을 좇는 것. 그 길은 소신과 의욕으로 가득찬 길이 될 것이다.

 

이런 바람직한 따라하기가 많아진다면 그 조직, 나아가 그 사회는 한 계단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필요한 게 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우상과 상징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따라할 것 아닌가.

 

우리 프로야구, 특히 구단 스스로는 지금까지 그런 우상과 상징을 만드는 데 소홀했다.

 

그리고 그 배경엔 질투와 시기가 앞서 남의 성공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근성도 한몫 했다.

 

그건 잊고,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더 많은 우상과 상징을 위하여.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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