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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이승엽·김선우의 시련은…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3. 5. 21.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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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01. 25 

 

덩치가 작아 외면당했다. 무명 대광고 3학년 때, 지금은 없어진 부산 쌍룡기전국대회에서 팀이 준우승을 해 특기자가 됐지만 선뜻 오라는 대학이 없었다. 서울지역 대학에서 버린 그를 불러준 곳은 창단팀 영남대였다. 1973년, 그는 울면서 대구행 기차를 탔다. "두고 보자, 반드시 성공해서 서울에 다시 오겠다"를 되뇌면서. 그리고 그는 영남대 2학년 때 대학선발팀 유격수가 됐고,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다.

 

김재박. 그는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명감독이자 현역 시절 누구보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였다. 그러나 그는 작고 평범한 체격에다 내야수라는 포지션 때문에 불러주는 팀이 아니라 받아주는 팀에서 야구를 했다. 중학교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는 서울, 대학은 다시 대구로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목표와 진지한 신념, 성실한 노력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

 

월급 45만원. 85년 11월 열일곱살의 '연습생' 장종훈이 빙그레 이글스로부터 받은 첫 월급이다. 세광고 졸업을 앞두고 대학과 프로에서 외면당한 장종훈은 빙그레 훈련장을 찾아가 테스트를 받은 끝에 선수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프로 관계자들을 만나려고 아버지와 여관방에서 불안한 밤을 보냈던 그날을 그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87년 주전 유격수 이광길이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기회를 잡았다. 지금 한국프로야구에서 장종훈보다 많은 안타, 많은 홈런을 친 선수는 없다. 첫 월급 45만원은 글러브 하나 사면 남는 게 없는 돈이었다. 그렇게 볼품없이 출발한 장종훈도 시련의 순간들을 소신과 신념으로 이겨냈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시련은 이겨낼 수 있는 상대에게만 온다. 시련은 의지나 됨됨이를 시험하는 것이다. 시험일 뿐 운명이 아니다. 그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뒤를 돌아볼 때, 그 시련은 의미 있는 추억이 된다. 반면에 좌절하거나 포기한다면 그 시간은 그저 아프기만 한 고통, 잊고 싶은 악몽이 된다.

 

이승엽과 김선우. 94년 캐나다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치고 던지며 한국야구에 월드챔피언의 영예를 안긴 주역들이다. 그들에게 이 겨울은 유난히 춥다. 시련의 계절이다. 지난 시즌 일본에서 실망의 한 해를 보낸 이승엽은 국민타자의 명성에 흠집이 났다. 올해도 보장된 건 아무것도 없다. 워싱턴 내셔널스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된 김선우는 다른 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손길이 없으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내에서의 탄탄대로에 자만하지 않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도전한 그들이다. 그 강한 신념과 노력이라면 지금의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대선배 김재박과 장종훈의 교훈이 훌륭한 모범답안이다. 

 

이태일 /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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