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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다시 시작하는 그들에게 격려를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3. 5. 2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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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28

 

김용우 윤동건 채종국 이윤호 박가람 김재현 윤성길 신창호 홍성용 김회권(이상 LG) 박장희 이상현 오성민 조순권 김동현 정종수 이유섭 이종선 임경남 장요상(이상 히어로즈) 조광훈 이인철 이준수 김준무 이강서 이상훈 김정수(이상 KIA) 권준헌 장순천 임재청 조원우 김수연(이상 한화) 마해영 최길성 김정환 김만윤(이상 롯데). 36명.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겠지만 이상은 28일 현재 프로야구에서 방출된 선수들이다. 1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 비정규직. 공식 명칭은 자유계약선수지만 사실상 ‘불필요 선수’라는 낙인이나 다름없다. 보류선수 명단 마감일인 11월25일 이전에 발표하는 이유는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는 형식적인 ‘배려’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노장들이야 그렇다 쳐도, 평생을 야구만 알아 온, 20대 중반의 선수들에게 방출은 암담한 미래로 다가온다. 그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무시한, 혹시 연초 발생한 야구선수 출신의 살인사건을 떠올리는 다른 이들의 시선은 그들에게 작금의 경제위기보다 더 심한 압박이다.

 

김기성(32)은 1998년 한화 2차 3번지명 외야수였다. 당시 한화의 2차 1번은 포수 신경현, 5번 포수 채상병, 10번 투수 마정길. 김기성은 공주고-원광대를 졸업한 날랜 선수였다. 하지만 프로야구 통산 8경기 출전에 1타수 무안타 1득점 1삼진.

김기성은 한화가 우승하던 99년 말 방출통보를 받았다. “방출 전날 소문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 나는 야구선수였다. 야간훈련까지 모두 마쳤다”고 했다. 질병이 문제였다. 심장 부정맥과 습관성 어깨 탈구.

 

막막했다. 서울에 있는 동생 집에 가다가 지하철에서 전단지를 발견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 무작정 학원을 찾아갔다. “지금 산에서 내려왔는데, 나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후 6개월을 죽도록 매달렸다. “고시원에 살면서 잠자는 시간 빼고 전부 책을 봤다”고 했다. 김기성의 매형인 송재익 선수협회 운영과장(전 SK)은 “처남이 6개월 동안 정말 미친 듯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야구선수 김기성은 그렇게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다. 외국계 IT업체인 ‘PRM솔루션’을 첫 직장으로 여러 곳에서 경력을 쌓아 이제는 리치인터넷환경 분야의 수준급 프로그래머가 됐다. 한화에서 방출된 뒤 9년이 지난 지금 김기성의 직함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N사의 콘텐츠관리시스템개발팀 과장이다.

 

김 과장은 “야구? 지금 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야구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천번의 스윙과 천번의 펑고. 보기에 쉬운 플레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도록 훈련하는 게 야구다.

 

영광의 한국시리즈가 진행 중이지만. 그래서 36명, 그들에게 모두 함께 격려를. 김 과장의 말대로 야구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는 각오로. ‘꼴찌 반란’으로 월드시리즈에 오른 탬파베이 조 매든 감독이 “태도가 결과를 낳는다!(Attitude is a decision!)”고 말했던 것처럼. 각오가 있다면 야구는, 인생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이니까.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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