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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내시에 대해 알고 싶은 몇 가지 것들 4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2. 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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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의 존재는 인정하고, 그들의 생활도 보장해 주지만 절대로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 하에서 체계화된 조선의 내시제도는 확실히 그 효과를 보았으니,

 

“여보…이번에 내가 입번(入番 : 당번이 되어 들어가는 것. 원칙적으로 내시는 출퇴근을 하는데, 주야로 12시간씩 교대근무를 했다. 이런 교대 근무조 말고, ‘장번長番’이라 해서 며칠이나 몇주 정도 길게 궁에서 근무하다가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장번 근무 말고도 ‘출입번出入番’이라 해서 교대로 풀타임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원칙이 있었는데, 바로 출근이 있으면 퇴근도 있다는 것이다)하게 됐어. 문단속 잘하고, 우리 원택이 열있는거 같드만, 애 감기 안 걸리게 군불 많이 때고….”

 

“걱정 마시고 출근 하세요.”

 

“그리고 바람났다간, 내 손에 죽어! 알았어?”

 

“아이, 자기도 참….”

 

“나 퇴근하고 나서 컴퓨터 히스토리 다 뒤져볼 거거든? 이상한데 들어가 요상한 채팅하고 그랬다간 봐. 아예 집을 다 불 싸질러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이랬던 것이었다. 실제로 내시들은 가정을 얻으면서 상당히 건실해 졌는데, 나중에 이르러선 내시들이 족보까지 만들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게 바로 양세계보(養世系譜)거든? 우리 내시들의 뿌리가 모두 나와 있는 것이지.”

 

“그런데…왜 아들들이 다 성이 달라요?”

 

“야이 자식아! 내시가 어떻게 아들을 낳냐? 전부 양자들인 거지.”

 

“아니 그럼 자기 성을 주는 게 아니었어요?”

 

“같은 집안사람이면 그대로 성을 쓰는데, 다른 집에서 양자를 데려오면, 그쪽 성을 그대로 쓰게 했지. 뭐시냐, 그래도 뿌리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달리 호주제겠냐?”

 

“그렇군요….”

 

이렇게 보면, 조선의 내시들도 꽤 성공적으로 제도권에 편입되었고, 나름대로 괜찮은 생활을 한 거 같았는데…조선의 유학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던가? 도학(道學)을 온 세상에 퍼뜨려야 하는 사명감에 불타던 인물이 아니던가? 아울러 도학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는 임금의 근신들 중에 유학을 모르는 이가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아닌가?

 

“내시들 말야, 그것들도 벼슬하는 애들인데…기초적인 소양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좀 배우면, 지들이 정치나서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공부시켜야겠지?”

 

“근데 말야…내시놈들 공부시켰다가 엉뚱한 짓 하면 어쩌지?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도 있는데 말야.”

 

“하긴…중국 애들은 아예 내시들은 까막눈으로 뽑았잖아? 그리고 꼭 필요한 몇 놈만 골라서 엘리트 교육 시키고….(이 엘리트 교육기관이 ‘내서당內書堂’이란 곳이었다) 중국 애들도 꼭 가르칠 놈들만 가르쳤는데우리도….”

 

“어허 모르시는 말씀, 걔네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어. 걔네들 땅덩이가 좀 크냐? 걔네들 환관 수가 많을 때는 10만을 넘어서는데…그것들을 어떻게 다 가르치냐? 그리고 걔네들은 제도가 엿같아서 내시들이 똑똑하기까지 하면 제어못한단 생각에 글을 안가르친 거지만, 우리는 좀 다르잖아? 지들도 사람인데…배우고, 가르치면 사람답게 바뀌지 않겠냐?”

 

이리하여 조선은 내시들에게 교육을 시키게 되었으니, 바로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사서인 논어, 맹자, 중용, 대학과 삼강행실도 였다. 내시들에게 삼경을 뺀 것은 내시에게 삼경까지 가르치는 건 ‘오바’라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보면은 뭐 대충 분위기만 잡고, 글자 뜻이나 외울 정도로 설렁설렁 가르쳤을 것 같은데, 의외로 내시들의 교육은 ‘빡셌다’

 

“야야! 네들 시험 통과 못하면 낙제야! 낙제면 뭔 줄 알아? 근무일수에 3일 추가야! 근태점수 떨어지고, 승진 못해 알아? 네들 승진 시험 떨어지면 좋겠어? 알면 똑바로 공부해 알았어?”

 

그랬다. 이 당시 내시들은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시험에 통과해야 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5세가 되면 이 시험이 면제였던 것이다. 3명의 내시교관(內侍敎官 : 내시를 교육하는 관리이다. 조선 초 3명의 교관이 내시부에 항시 배치되었다)들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내시들을 가르쳤지만, 35세가 되면,

 

“그래, 그래…. 지금 공부해 봤자 뭐하겠냐? 대충 살다가 가라…너도 참 힘들겠다.”

 

이랬던 것이었다. 사극 속에서 보는 내시는 언제나 하이소프라노 목소리 톤으로 왕 옆에서 간사하게 재잘거리거나 음흉한 눈빛으로 간신(姦臣)의 역할로만 그려지는데, 실상 따지고 보면 조선에서 내시로 산다는 것도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신하들의 견제를 받아가며, 공부도 해야 했고, 부지런히 양자도 찾아야 했으며, 가정도 건사해야 했던 내시들. 따지고 보면 그들도 엄연한 직업인 이었다는 사실…이제는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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