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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화산 이씨(花山 李氏)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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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많은 왕조(王朝)가 끝바꿈했던 월남(越南)에서 215년이라는 비교적 영속(永續)한 왕조가 이조(李朝)로 지금도 이 왕조가 출범한 날을 정부 차원에서 성대(盛大)하게 기념한다.

 

올해에도 주초에 하노이에서 베풀었는데 이 식전에 한국의 화산(花山) 이씨(李氏) 종친(宗親)들이 초대되며 출입국관리로부터 자잘한 요금이나 세금에 이르기까지 귀빈(貴賓) 대접을 받고 베트남 국민과 법적(法的)으로 동등(同等) 대우를 해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하기까지 된 연유는 이렇다.

 
9대 계승(繼承)된 월남 이씨 왕조는 전 4대까지는 선정(善政)을 베풀고 국토도 늘리곤 했으나 후 5대에는 반란(反亂)이 끊이질 않았다. 이에 척신(戚臣)인 진수도가 권모술수(權謀術手)를 써 무능한 끝임금 혜종을 강제로 물러나게 하여 절에 연금(軟禁)시켰다. 그리고서 일곱살난 왕녀(王女)를 임금으로 받들고 그의 나이 어린 조카로 하여금 여왕과 결혼시켜 저항없이 이씨 왕조를 진씨 왕조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씨 왕족의 반동(反動)을 두려워하여 진수도는 연금한 혜종을 자결토록 유도하고 혜종의 장례날을 기해 계략(計略)을 세워 모여든 이씨 왕족을 몰살해버린 것이다.
 
이 흉계(凶計)를 눈치채고 유일하게 빠져나온 것이 혜종의 숙부인 왕자 이용상이다. 추적을 피하여 바다에 배를 띄우고 정처없이 떠나갔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베트남 최초의 보트 피플이었다 할 수 있다. 이렇게 바람부는 대로 흘러흘러 와닿은 곳이 한반도 황해도 옹진반도였다. 상륙한 곳이 화산(花山)이요, 이 곳에서 정착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몽골군의 남하로 국토가 유린당하고 있을 때로 이 월남왕자는 몽골군을 막아내어 조정이 알게 되었고 고려 임금은 화산 일대를 식읍(食邑)으로 내리고 본관(本貫)을 화산으로 하는 이씨 사성(賜姓)을 했다. 지금도 화산 인근에는 이 월남왕자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한다. 몽골군의 침입을막고자 쌓았다는 안남토성이 남아있고, 그가 고국이 그리워질 때마다 조국쪽을 행해 통곡을 했다는 월성암이며, 이씨 왕조의 시조(始祖) 이름을 딴 남평리, 그리고 당시 월남의 나라 이름인 교지리가 마을 이름으로 남아있다.
 
780여년 전에 이산한 혈족(血族)을 자국민(自國民)과 똑같은 법적 지위(地位)로 대접한다는 것과 그땅에 자라고있는 1만여 한국 혼혈아(混血兒)에 대해 우리가 뭣을 해주고 있는가가 대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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