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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경교장(京橋莊)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2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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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광복 후 귀국한 김구 선생이 살다가 시해당했던 집인 경교장(京橋莊)이 서울시 지정 문화재(文化財)가 돼 보호받게 됐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이 양옥은 일제 때 손꼽는 광산 재벌 최창학이 별장으로 지었던 호화주택이었다.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와 더불어 돌아온 김구 선생에게 최창학이 바친 집으로 본 이름은 이곳 지명을 따라 죽첨장(竹添莊)이었다. 서울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꿀 때 갑신정변(甲申政變) 무렵 일본공사였던 죽첨의 성을 따 마을 이름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에 김구 선생이 입주하면서 이 왜색(倭色) 이름을 본래 이곳 지명을 따 경교장으로 바꾼 것이다.
 
임시정부 공관(公館)으로, 건국(建國)의 산실(産室)로, 그리고 남북통일 협상의 산실로서 역사에 기억되는 이 집 2층 시해(弑害) 장소에는 관련 사진이 전시돼 있다.
 
그리고 2층 낭하(廊下) 남단(南端), 남으로 난 창변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도사려있기도 하다. 일제 때 경주 최부자로 알려진 최준의 집에 복면 강도가 들었다. 권총을 들이대며 300원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현금이 없다 하자 약속어음이라도 쓰라는 것이었다. 이런 어리석은 강도도 있나 하고 써주었다. 이를 받아들더니 이 강도는 복면을 벗으며 “이 사람아 나일세, 나ㅡ” 하는 것이었다. 한때 사업도 함께 했던 백산 안희제가 아닌가. 최준은 백산이 상해임시정부 재정을 조달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몇차례 백산을 통해 헌금(獻金)을 해온 터였다.
 
백산도 다시 헌금을 요구할 명분도 없고 또 거절당할까봐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약속어음 강도를 자행한 것이었다. 최준은 이렇게 백산을 통한 헌금이 절반만이라도 임시정부에 들어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왔었다. 환국(還國)한 김구 선생은 큰 돈으로 도와준 최준을 경교장에 초치하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때 백산을 통해 받은 자신의 헌금 액수를 따져보던 최준은 마구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헌금액에 차이가 나지않았기 때문이다. 최준은 달려가 경교장의 남으로 난 창을 열어젖히고 멀리 의령땅 백산의 무덤을 향해 대성통곡했다. 그동안 의심했던 것을 용서하라면서ㅡ.
 
김구 선생이 떠난 후 경교장은 최창학에게 돌려졌고 그 후 삼성재단에 양도되었다가 삼성 강북병원 구내에 들어있는데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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