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현직 철학과 교수들이 행인들 앞에서 즉석 마당극 한판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주제는 '도덕성 장례식'ㅡ.
오늘날의 도덕성(道德性)을 좀먹고 있는 거짓말·금전만능(金錢萬能)·이기주의(利己主義)·비합리성(非合理性)·가진자의 무책임(無責任) 등의 오귀(五鬼)를 하나씩 몰아내고서 도덕성을 다시 살리는 길은 큰 어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해서 연기자와 관객들이 꽃상여 메고 청와대(靑瓦臺)를 향해 행진하는 것으로 맺고 있다. 응달에서 번지고 있는 바람에 아무도 손대지 못 하고 있는 정신암(精神癌)에 조명(照明)을 대는 일이거니와, 상아탑에서 사색(思索)하는 철학을 행동(行動)하는 철학으로 거리에 끌어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해프닝이다.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이 오귀는 이미 마당극 이전에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지옥(地獄)에서 심판 받고 응분(應分)의 형벌을 받아왔다. 이집트의 <사자(死子)의 서>에 보면 사자가 저승에 가면 심장(心臟)을 도려내어 정의(正義)의 저울에 다는데, 평생 거짓말 한 것이 모조리 드러난다. 죄가 무거워 심장이 아래로 처지면 그 아래 괴물들이 지켜보고 있다가 다투어 뜯어먹어 버린다.
중국에는 지옥을 둘러보고 쓴 입명담(入冥談)이 많은데 들어가자마자 업경(業鏡)이라는 커다란 거울에 전신을 비쳐본다. 거기에는 이승에서 도리대로 살았는가 도리를 어기고 살았는가의 궤적이 나오고, 재산이나 지식이나 권력을 가진 자의 월권(越權)도 업(業)으로 고스란히 비쳐진다. 우리나라 상여 메기는 향두가에 보면 염라대왕은 사자에게 이승에서의 이기적(利己的) 행위·이타적(利他的) 행위 등 도덕성에 대해 자상하게 묻고 응분의 지옥을 배정해주고 있다.
제주도에는 토굴(土窟)이 많아서인지 지옥순례(地獄巡禮)로 도덕심을 배양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를테면 바윗덩이만한 금괴(金塊)에 깔려 영원히 비명을 지르고 죽지 못하고 있는 여인을 만난다. 살았을 제 황금만능으로 살았던 데 대한 업보였다.
단테의 지옥순례로부터 사르트르의 <출구 없는 방>에 이르기까지 도덕성 타락에 대한 내세(來世)에 있어서의 응징(應懲)은 가공하기 이를 데 없다. 옛 조상들이 요즈음보다 도덕적 부패가 덜 했던 것은 이 같은 지옥 응징을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판 마당극으로 끝내지 말고 우리나라 고위 지도층의 오귀 요소를 감시하여 고발하는 상시(常時) 철학망(哲學網)을 펴놓았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