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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자살약(自殺藥)

溫故而之新

by econo0706 2007. 2. 2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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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한국사플라톤의 <파이돈>에 보면 독배를 소크라테스에게 들려주자 이 철학자는 이 독약에 대해 물었다. 이를 마시고 걸으면 발이 무거워지고 가로누우면 죽음이 온몸에 번져나간다 했다.
 
그는 약을 조금씩 마심으로써 삶을 벌어가며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그 독약은 헴록이라는 식물독으로 고대희랍의 국정 자살약이었다. 당시 기록에 보면 완전하게 빨리 죽기 위해서는 형리들에게 12드라크마(은화)의 뇌물을 바쳐야 했다던데, 죽기에 부족한 분량의 자살약을 먹이기 때문이라 한다.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자살약은 아피스라는 독사독이다. 그는 사형수에게 별의별 자살약을 먹여 경련이나 신음없이 잠자듯 죽어가는 이 뱀독을 택했다 한다. 네로를 황제로 즉위시킨 아그리피나는 룩스타라는 전속 자살약 전문 조제녀를 두고 황제를 비롯해 정적들을 자살로 위장, 독살시켰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에 침입하려 했을 때 인도의 왕은 절세의 미녀 하나를 독약이 피부로부터 스며나오는 독처녀로 만들어 품고 자게 함으로써 독살시키려 했다. 한데 참모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음모를 갈파당해 목숨을 건진다.
 
한국의 자살약이랄 사약은 죄가 가벼울 때 식물성 독인 부자나 오두요, 죄가 무거울 때는 광물성인 비상이었다. 살의를 품었다 할 제 남자는 비수를 가슴에 품었다 하고 여자는 비상을 가슴에 품었다 하리만큼 대표적인 자살약이요, 또 빈도 높은 타살약이기도 했다. 서양에서도 비상을 '메디아의 드레스'라고 하는데 희랍신화에서 남편을 빼앗긴 메디아가, 빼앗아간 신부에게 비상을 적신 드레스를 선물, 그것을 입음으로써 서서히 죽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첩 간에 점진 살인약으로 많이 이용되어왔던 비상이다. 우리 옛 부녀자들 사이에 '거울 뒤를 긁는다'하면 자살을 뜻했는데, 거울 뒤에 처리한 수은을 긁어먹임으로써 자살을 위장한 독살이 무척 성행했다. 이처럼 자살약은 권력이나 음모에 의해 자살을 위장한 타살로 보다 많이 이용돼내린 데 동서가 다르지 않았다.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에서 자살약 조제를 합법화할 움직임이 있다던데 바로 타살의 합법화라는 측면을 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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