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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귀신을 쫓은 다산선생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by econo0706 2007. 4. 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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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1780년은 정조 4년으로 다산의 나이 19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52년이라는 장기집권의 영조의 시대가 끝나고 젊고 패기에 찬 학자군주 정조의 시대가 시작된 지 4년, 무언가 희망이 있고 오랜 실권(失權)의 남인(南人)계열에도 조금은 햇빛이 비칠 가망성이 있던 때였습니다.
 
다산이 16세이던 정조 원년에 다산의 아버지께서 전라도 화순(和順)의 현감으로 임명되어 다산은 아버지를 모시고 화순에서 글을 짓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와는 정말이지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진 전라도 생활은 그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아버지께서 경상도 예천(醴泉)군수로 임지가 바뀐 때가 바로 19세이던 1780년이었습니다. 3년의 전라도 생활을 마치고 그 무렵 경상도 진주(晉州)에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근무 중이던 장인 홍화보(洪和輔) 어른을 부인과 함께 찾아뵙느라 생후 최초로 경상도를 찾아갑니다. 진주의 촉석루를 구경하고 남강에서 뱃놀이를 즐기다가 아버지의 임소인 경북의 예천을 찾아갑니다. 두 번째 들른 경상도 땅이 됩니다.
 
19세의 소년이자 장가를 든 어른, 책을 읽고 글을 짓는 일에 여념이 없었기에 독서할 장소를 찾던 중 비워져있던 예천의 반학정(伴鶴亭)이라는 정자를 발견했습니다. 정자 주변에는 기화요초(琪花瑤草)가 자라고 있고 연못까지 아름다워 경치가 대단했으나 아무도 거처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정자에는 귀신이 살아서 혹 병을 얻든지 그렇지 않으면 놀래고 두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라고 답하더란 것입니다. “귀신이란 오직 사람만이 불러들이는 바이다. 참으로 자기 마음에 귀신이 없다면 귀신이 어떻게 스스로 올 수 있겠는가.” 다산은 이렇게 말하고는 아버지께 말씀드려 제대로 청소하고 수리해서 거처하였습니다.
 
그 좋은 정자에서 조용하고 한가롭게 책을 읽고 글을 지으며 아무런 탈 없이 세월을 보냈다는 내용이 다산이 19세에 지은 「반학정기(伴鶴亭記)」라는 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세 소년의 뛰어난 과학적 사고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과 확신이 젊은 날부터 있었기에 그만한 학자로 성장하지 않았을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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