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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숙청 대상자에서 경제 관료는 제외하라 下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9. 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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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주체들의 개념 가득 찬 생각으로 2년 만에 호조판서 자리로 컴백한 김신국! 과연 그는 어떤 경제정책을 들고 나왔을까?
 
“일단 나라가 임진왜란으로 개판됐는데, 일단은 민생을 추슬러야 함다.”
 
“야야,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빼고, 경제학원론에 나올만한 이야기를 좀 해봐봐. 우리가 왜 욕 먹어가면서 널 호조판서에 앉혔겠냐?”
 
“그래서 생각한 게, 돈을 만들어서 유통하자는 겁니다.”
 
“돈? 아…세종대왕이 만든 조선통보 같은 거? 그거 좋지. 가뜩이나 국가재정이 적자인데, 돈으로 일단 때우는 것도 괜찮지.”
 
이때까지 조선에서 ‘돈’의 개념은 재정이 부족해서 찍어내는 ‘어음’과 같은 개념이었다. 어음이라면 그나마 좀 받아줄만 하였지만, 확보된 재정 없이 통화만 만들어 내니…그 마지막은 뻔해 보였다. 그러나 김신국의 생각은 달랐으니,
 
“이제까지의 화폐유통은 모두 잊어주십시오! 재정의 확보 없이 돈을 찍을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통화유통은 말 그대로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 내자는 것입니다. 화폐가 통용되면 이제 번거로운 물물거래는 사라지게 되고, 이는 곧 유통이 탄력 받게 되어 상거래와 금융시장이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거래와 금융시장이 발전한다는 건 곧 농업국가인 조선이 공업국가로 발전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는 소리입니다. 조선을 구할수 있는 방도는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김신국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한 통화정책을 밀어 붙이게 된다. 결국 조선통보를 조선의 법화(法貨)로 만든 김신국은 맨땅에 헤딩하듯이 통화유통에 앞장서게 된다. 김신국의 이런 노력으로 통화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 조선사회는 이후 김신국의 뒤를 이은 김육이 호조판서를 역임할 때 쯤 해서는 화폐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숙종조대는 완전한 화폐경제로 이행할 수 있게 되었다. 자, 문제는 김육에게 바통터치 하기 전까지가 문제였는데….
 
“절 믿고 호조판서를 맡겼으면 끝까지 절 밀어주어야 할 게 아닙니까! 조선이 살길은 통화를 유통시켜 경제 활성화를 시키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아니…그래도 너무 급작스럽게 통화체제로 넘어가면….”
 
“백성들이 통화에 대한 개념을 탑재하려면 적어도 한세대는 지나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버티는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지 않습니까?”
 
“아니…내 말은 지금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개혁에도 속도조절이란 게 필요한 거구….”
 
“지금 조절할 속도가 어디 있슴까? 지금은 밀어붙여야 할 때입니다!”
 
인조와 혁명주체들은 김신국을 믿고 그에게 호조를 10년간이나 맡기게 된다.
 
“뭐, 경제정책이란 게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결국 김신국의 이런 강력한 통화보급 정책은 그 뒤 김육에게 이어졌고, 숙종조대 완벽한 통화체제를 구축하게 되는 단초가 되어준다.
 
“역쉬…경제정책은 아는 놈을 골라서 써야 한다니까….”
 
“아는 놈만 써야 하냐? 아는 놈 쓰는 것도 좋지만 한번 밀었으면 끝까지 그놈한테 몰빵해야 한다니까…중간에 바꾸느니 망하더라도 끝까지 한길로 가는 게 훨 낫다니까….”
 
이렇게 보면, 인조와 인조반정 주체들이 꽤 사람 보는 안목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조선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인사 기준…특히 호조판서를 고르는 기준은 조선 초부터 확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야야, 일단 뭐 이조나 공조판서 같은 애들이야 몇 달 하다 아니다 싶으면 걍 바꿔도 되거든? 근데 호조판서는 아니거든. 사람 하나 키우는 것도 문제지만,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호조판서 임기를 보장해줘야 해. 경제는 역시 통일성과 연속성이 생명이거덩.”
 
이런 연속성을 얼마나 잘 지켰는가는 통계가 말을 해주는데, 조선 초부터 1719년까지 약 3백년 동안 이조판서로 임명된 사람은 총 317명…평균 9개월의 임기였던 반면에 호조판서로 임명된 사람은 이의 절반도 안되는 146명, 평균 재임기간은 2년1개월 이었던 것이다. 유교경전에 휩싸여 고루하게만 느껴지는 조선에서도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호조만은 실사구시(實事求是)란 말을 적용했던 조선. 장관의 평균 임기가 겨우 14개월도 안 되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바라보면서 답답해 질 수밖에…. 낡고 고루하게만 느껴지는 조선에서조차 경제정책만은 전문성과 연속성을 담보로 한다며 호조판서만은 능력위주로 선출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가급적 개각명단에서 빼려고 신경 썼던 조선. 500년 전 조선의 관료들이 보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관료들은 어떤 모습일까? 전직 경제부총리를 데려다가 교육부총리를 삼는 이런 무원칙한 인사를 우리 선조들은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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