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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조선시대 이자와의 전쟁 下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9. 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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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의 등장이 조선의 사채시장을 팽창시켰다?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잘 뜯어보면 아주 간단한 이야기였으니,
 
“돈놀이가 제일 쉬웠어요~”였던 것이다. 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자놀이를 하려면 쌀과 베를 직접 들고 지고 움직여야 했기에 어느 정도 재력이 있어 사람을 부릴 정도가 아니라면 돈놀이를 하기가 어려웠다. 쌀을 수십 가마나 날라야 했고, 베를 들고 가더라도 기본이 10필 이상씩이었으니 그 무게가 만만찮았던 것이다. 그러나 돈은 달랐다. 휴대가 간편하고, 무게도 덜 나갔고, 결정적으로 부식이나 유실의 걱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돈이 나오기 전까지 쌀의 경우는 매년 10% 정도를 자연소모분으로 계산하였는데, 이 자연소모분에는 썩거나 쥐가 파먹는 걸 상정한 것이었다. 자,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너나 할 거 없이 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야, 이 엽전이란 게… 장난이 아닌데? 들고 다니기 편하고, 쥐 파먹을 걱정 없고 계산하기 쉽고 모든 화폐를 대체하는 절대화폐잖아!”
 
상평통보 발매 초기 쇠쪼가리를 어떻게 믿고 쓰냐며, 엽전거부운동을 벌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평가였다. 하긴 초창기 때에는 녹봉으로 받은 엽전을 녹여 그릇을 만드는 황당한 사건도 있긴 있었지만, 근 100년 가까이 꾸준히 화폐를 유통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조선은 완전한 화폐경제체제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흠… 이게 또 돈이란 게 묵혀 놓는다고, 새끼를 치는 게 아니잖아? 돌고 돈다고 돈 아니겠어?”
 
“맞습니다! 재산증식에 있어서 가장 큰 죄는 투자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지 않는 겁니다. 이참에 펀드에 하나 드시죠?”
 
“뭐 그것도 괜찮겠지? 한 계좌 정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18세기 초반 완전한 화폐경제로 이행한 조선에서는 너나 할 거 없이 사채놀이에 뛰어들었다. 가볍고, 부식되지 않고, 쥐 파먹을 일 없는 엽전으로 인해, 사채는 온 국민의 재테크가 되어 버렸다.
 
“전하! 큰일났사옵니다! 시중에 거의 모든 돈이 제2금융권으로 몰려 온 나라가 일수놀이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게 무슨 개스런 토킹이야? 조용히 있던 돈들이 왜 사채시장으로 뛰어드는데?”
 
“쌀이나 베 가지고 사채놀이 하려면 창고 있어야죠, 머슴 있어야죠, 창고 관리인 있어야죠. 한마디로 초기 투자비용과 관리비용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엽전은 썩을 염려도 없고, 무게도 별로 안 나가니까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아진 거 아닙니까? 그러니 개나 소나 다 사채놀이하겠다고 뛰어드는 거죠, 뭐.”
 
“흠… 그렇구먼. 그런데 뭐가 문제지? 어차피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게 자본주의인데, 대충 내버려 두면 시장이 알아서 조정하지 않겠냐?”
 
“시장상황대로 두면 서민들만 죽어나니까 문제죠. 있는 것들이야 여윳돈으로 사채를 놓지만, 없는 애들은 당장 한푼이 아쉬운 처지에 50%대의 이자를 내고 계속 써야 하잖아요. 더구나 이자율이 계속해 오르는 통에….”
 
“이 자식들이, 경제발전하라고 돈 만들어 놨더니 돈 가지고 돈놀이를 해? 호조판서! 오늘부로 사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리하여 숙종 대 조선은 사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한(?) 이식제한령(利息制限令)을 선포하게 되는데,
 
“일단 말이야… 들고 움직이기 쉬운 돈이나 베로 사채놀이를 할 때는 이자율이 무조건 연리 20%야. 이거 이상 못 받아. 다들 언더스탠드 했지? 좋아 가는 거야! 이제 부동산 투… 아니 아니, 사채놀이는 끝난 거야!”
 
조정의 이런 이식제한령은 좀 효과가 있을 듯이 보였지만, 사채시장을 안정시킬 순 없었으니,
 
“전하, 그런 땜빵식 처방으론 사채시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좀더 본질적인….”
 
“나보고 어쩌라고? 이 정도면 잡힌다고 그랬잖아!”
 
“아니, 좀더 고강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알았어. 그럼 앞으로는 어떤 이자를 막론하고 1년 이상 이자를 못 받게 하자… 그럼 됐지? 오케이?”
 
이렇게 땜질식 처방은 조선후기 내내 이어지게 되는데, 종국에 가서는 어떠한 이자도 연리 20%를 못 받게 하였지만, 잘 지켜졌는지는 의문이다.
 
보면 알겠지만, 지금 대한민국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너도나도 부동산이 돈이 된다는 생각에 땅에 돈을 묻고, 여기에 자극받은 정부는 이걸 컨트롤하겠다며 규제책을 남발하고, 예나 지금이나 재테크와 투기의 애매모호한 간극 사이에 죽어나는 건 서민뿐이란 사실 또한 똑같다 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 사채시장은 그렇게 몇번의 부침을 더 겪고는 경술국치 이후 ‘이자제한법’으로 정리되었던 것을 보면 대한민국에서의 땅 투기도 쉽게 잡힐 리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죽어나는 건 서민뿐이란 사실… 이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잔인하게만 느껴지는 지금이다.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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