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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조선시대 이자와의 전쟁 中

엽기 朝鮮王朝實錄

by econo0706 2007. 9. 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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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관료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호조판서의 이자율제한정책에 딴지를 걸고 있는 상황! 어째서 정부 관료들이 이자율제한을 반대하는 것일까? 그것은 부동산 땅투기를 잡겠다고 설치는 공무원들이 강남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으니,
 
“전하! 지금 정부의 고위공직자를 비롯해 사대부가의 사람들 중 이자놀이를 하지 않는 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백성들은 고리대금에 허리가 휘어지는데 이런 사정을 두루 살펴 챙겨야 할 공무원들이 이자놀이를 하고 있다니요! 이는 나라가 망해가는 수순입니다! 지금 고금리를 잡지 못하면, 언제고 이 거품은 터집니다. 지금 조선의 경제는 버블경제이옵니다. 거품이 한꺼번에 터지기 전에 거품을 빼야 합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충신 났네, 충신 났어. 전하, 저희가 누굽니까? 사대부 아닙니까? 선비들이 원래 이슬만 받아먹고 사는 그런 존재인데, 배운 도둑질이란 것이 책 읽고, 글 쓰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이런 저희들이 생활을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돈을 밝히면 얼마나 밝히겠습니까? 다달이 나오는 녹봉이나 챙겨 먹으며 근근이 살다가, 이대로 가다간 평생 전세살이도 못 면할 거 같아서 재테크로 사채놀이… 아니, 제2금융권에 투자를 좀 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때려죽일 일입니까? 전하도 제2금융권에서는 큰손으로 놀지 않습니까?”
 
“흠흠… 그… 그렇지, 원래 제2금융권이란 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위험부담이 좀 있어서리….”
 
“맞습니다. 전하! 저희들도 그저 재테크 차원에서 쬐끔… 아주 쬐끔 장리를 놨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조선의 양반치고 장리 안 놓은 양반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저희들이 만약 장리를 안 놓는다면, 그 불쌍한 백성들은 흉년에 어떻게 살겠습니까? 저희가 그나마 장리를 놓고 돈을 빌려주니까 흉년에도 백성들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랬다. 조선시대 내내 양반관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연리 50%의 살인적인 사채이자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양반들에게 있어서 사채놀이는 대표적인 ‘재테크’ 수단이자, 가장 손쉽게 목돈을 만들 수 있는… 오늘날로 치면 부동산투기 같은 것이었다.
 
“전하! 이런 식으로 계속 미적거리다간 거품이 붕괴되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저… 저저, 호조판서… 저눔 자식, 저거 인사청문회 할 때 알아봤다니까. 저눔 자식 뼛속까지 빨갱이라니까. 전하! 지금 가장 큰 관건은 국채가 안 팔린다는 것이 아닙니까? 까짓 거 그러면 국채 수익률을 연리 20%로 보장해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괜히 국채문제로 건전한 재테크인 제2금융권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건 빈대 잡겠다고, 60평 타워팰리스에 불싸지르는 일과 똑같습니다! 빈대는… 아파트 소독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역쉬, 이조판서야. 간만에 들어보는 개념에 충만한 간언이었어! 오케이 거기까지! 국채이자율을 연리 20%로 올려주고 더 이상 제2금융권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고… The end, 시마이, 사요나라, 바이바이다!”
 
이리하여 조선 초기 연리 10%였던 국채의 가격은 조선 후기로 가면 연리 20%로 상향 조정되게 되는데… 그러나 이는 문제를 잠시 덮어둘 뿐이었지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었다. 조선이 본격적인 이자와의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터지게 되니… 바로 임진왜란의 발발이었다. 임진왜란이 조선사회에 던져 준 충격 중 가장 컸던 것… 그것은 경제의 개념 자체를 180도로 확 뒤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너네 나라 사람은 모른다 해? 바보 아닌가 해? 돈 내고 물건 살 수 없는가 해? 답답해 미치겠다 해! 너네 나라 사람은 그럼 뭘로 물건 사나 해?”
 
“아니, 그따위 은 쪼가리 가져와서 뭘 어쩌자고? 우리는 쌀 아니면 베… 둘 중 하나를 가져와야 물건을 준다니까, 그거는 네들 나라 가서 엿 바꿔 먹던 지지고 볶든 해라. 우린 그런 거 몰라. 무조건 쌀 아니면 베야! 없으면 딴 가게 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나라 장수들은 조선 조정에 은을 거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게 되었고, 조선도 차차 ‘화폐경제’라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음, 이게 참 언제까지 쌀 들고 베 들고 시장을 돌아다닐 수도 없고 말이야.”
 
“그렇죠? 명나라 애들이 은 쓰는 거 보니까 그거 괜찮던데요?”
 
“그렇지? 우리도 한번 ‘돈’이란 걸 만들어 볼까?”
 
“그거 굿 아이디언데요? 우리도 이제 선진경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케이, 그럼 함 만들어 보자고.”
 
이리하여 인조 11년에 만들어 진 것이 그 유명한 상평통보(常平通寶)였던 것이다. 이 상평통보의 등장으로 조선은 살인적인 사채시장의 팽창을 목도하게 되었으니, 어째서 상평통보가 사채시장의 팽창을 가져왔을까? 그 이유는 다음회에 밝혀지는데… 초특급 대하 울트라 경제사극 ‘조선시대, 이자와의 전쟁’은 다음회로 이어진다. 커밍 쑤~운! 
 

자료출처 : 스포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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