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현중] 미국 무대 도전! "저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현중 농구

by econo0706 2022. 9. 15. 23:52

본문

2022. 03. 10

 

안녕하세요. 데이빗슨 대학교의 이현중입니다.

 

제 농구 이야기를 멀리서나마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공유할수 있게 되어 큰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미국시간으로 지난 일요일, 데이튼 대학과의 원정 경기를 끝으로 정규시즌을 마쳤습니다. 

내심 아쉬웠던 경기(76-82, 패)였습니다. 수비를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스텝백 3점슛을 허용했고, 그 다음에 던진 제 3점슛도 들어가지 않았거든요. 

경기를 뛰는 동안에는 못 느꼈는데, 이 경기가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사람 욕심은 늘 끝이 없잖아요. 져서는 안 될 그런 경기들을 다 이겼다면 더 수월하게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부상 없이 시즌을 마무리했기에 다행인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는 대망의 A10 컨퍼런스 토너먼트가 시작됩니다. 저희 학교는 수요일에 워싱턴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그 전에 짬을 내 저의 이야기를 조금씩 전할까 합니다.

 

▲ 데이빗슨 대학 유니폼을 착용한 이현중 선수의 모습. / 사진 = 이현중 선수 제공, 점프볼

 

우물 안 개구리가 된 심정을 아시나요?

 

언제부터 미국 무대 진출에 관심을 갖게 됐냐는 질문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사실 중학생 시절만 해도 NBA는 막연한 동경의 무대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해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파이널 기간이었는데, 제가 스테픈 커리와 클레이 탐슨을 응원하고 있었거든요.

 

경기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오전 훈련 중에 몰래 나가서 휴대폰으로 점수를 확인하곤 했죠. 지금 생각하면 참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긴 한데… 한국 중계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저런 큰 무대에서 뛰면 어떤 기분일까? 코트에 서고 싶다는 영감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막연한 동경이었습니다. 솔직히 그거 보고 나서도 생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또래들처럼 좋은 대학에 가서 잘 성장해서 프로농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대학 감독님들이 제게 관심을 가져 주시면 기쁘기도 하고, 괜히 큰 선수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랬죠.

▲ 맨 왼쪽이 이현중 선수의 모습이다. / 사진 = 이현중 선수 제공, 점프볼

 

그랬던 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건 2016년 U17 세계선수권대회부터였습니다.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열린 대회였는데 당시 프랑스, 도미니카 등을 이기고 8강에 진출했어요. 남자농구가 세계대회에서 8강에 오른 건 대한민국 농구 사상 첫 쾌거였다고 해요.

저희는 미국을 만나 정말 잘 했어요. 당시 미국 청소년 대표팀에는 웬델 카터 주니어, 자렌 잭슨 주니어, 콜린 섹스턴, 케빈 낙스 처럼 지금은 NBA에 간 선수들이 있었어요. 

저희도 주전 형들이 슛도 잘 넣고, 즐겁게 했죠. 내심 ‘오늘 괜찮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점수차를 보니까 40점차가 났더라고요. 어? 어? 하는데 점수차가 순식간에 벌어졌죠. 서문세찬이랑 같이 “어? 왜 40점차나 났지?”라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그 경기에서 81-133로 패했어요.

경기가 끝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아무리 잘 해도 여기 나오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숙소 와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봤죠. 한국에서는 늘 저보다 작고 약한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늘 위에 있었잖아요. 그런데, 미국 선수들을 상대하면서는 바닥이 깔려있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어요. 그러다 보니 속된 말로 ‘현타’가 오더라고요. 

 

세계는 장난이 아니구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말했어요. “나도 유학 가고 싶어.”

미국에 엄마 아는 후배들도 계시니까, 어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사실,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겁은 났었어요.  삼일상고에서 농구하는 게 더 편했으니까….

미래를 바꾼 NBA 아시아 태평양 캠프

 

▲ 왼쪽에서 5번째 (10번 유니폼)가 이현중 선수의 모습이다. / 사진 = 이현중 선수 제공

 

2017년 6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NBA 아시아 태평양 팀 캠프(Asia Pacific Team Camp)는 제 미래를 바꾼 중요한 무대였어요.

 

저를 포함해 10명의 선수가 주최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어요. 여준석 선수도 있었고요. 당시 캠프는 김효범 코치님이 인솔해 주셨습니다.

 

NBA 캠프에 말릭 비즐리와 같은 NBA 현역 선수들도 만날 수 있고, 그들로부터 훈련도 받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는 그 생각 밖에 없었어요. 캠프 생각에 너무 설레어서 잠도 설치고 그랬죠.

 

캠프에서는 김효범 코치님 덕분에 즐기면서 플레이할 수 있었어요.

 

그때 재미있는 경험도 있었는데요.

 

김효범 코치님이 저에게 2번(슈팅가드)을 맡기시더라고요.

 

삼일상고에서 저는 4번(파워포워드) 역할을 맡아왔어요. 하윤기 선수가 5번(센터), 제가 4번이었죠.

 

그렇게 2번으로 뛰어보니 오히려 제 포지션에 잘 맞았어요. 정체성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캠프 기간 내내 2번으로 뛰었어요. 저희는 중국, 인도, 뉴질랜드에게는 매번 이겼고, 호주에게는 계속 지다가 마지막에 이겼습니다.

 

캠프가 끝날 무렵, 당시 NBA 글로벌 아카데미에서 근무하시던 박유진 선생님이 제게 귀띔해 주셨어요. 원래 준석이만 보러 왔는데, 저를 발견했다고요.

 

그러면서 NBA 아카데미 부사장님과도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영어로 답하니까 “왜 이리 영어를 잘 해?”라며 놀라시더라고요. 사실, 어머니가 예전부터 영어를 배워두라고 많이 강조하셨었어요. 영어 유치원도 나왔고, 중학교 때까지도 영어 공부를 신경 썼어요. 서투르긴 했지만, 그래도 공부한 보람을 느꼈어요!

 

캠프 측에서 제 경기력을 잘 봐주신 덕분일까요. 저를 다른 캠프에도 초청해 주셨어요.

 

하지만 그때 저는 어리니까 “부모님과 상의해보겠다. 하지만 무조건 갈 거 같다”라고만 답했죠.

 

솔직히 그때만 해도 3박 4일짜리 캠프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설명을 듣고 보니 1년 과정이더라고요! 호주에 있는 NBA 글로벌 아카데미 연수였던 거죠.

 

처음에 엄마께서도 단기 캠프 정도인 줄 아셨대요. 그래서 “어~ 가. 왜 안 되겠어?”라고 하셨죠.

 

그러다 나중에 아카데미의 실체(?)를 알게 되시고는 걱정을 많이 하셨대요. 제 앞에서는 흔쾌히 “가도 돼”라고 하셨지만 말이죠.

 

학교에서도 걱정이 있었을 거예요.

 

2017년에 저희는 4관왕을 했어요. (춘계연맹전, 연맹회장기, 주말리그 왕중왕전, 전국체전)

 

그런데 하윤기 선수가 졸업하고, 저까지 가버리면 학교 전력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어요.

 

▲ 삼일상고 시절 활약중인 모습. / 사진 = 이현중 선수 제공, 점프볼

 

하지만 학교 성적 때문에 제 꿈을 접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당시에 엄마가 뒤에 많이 도와주셨더라고요.

 

아버지가 걱정이 많았더라고요. 저까지 나가면 삼일은 어떻게 하냐고.

 

그때 엄마가 헛웃음 치시면서 그랬대요.

 

“삼일이 중요해? 아들이 중요해?”

 

그렇게 제 호주행이 결정됐답니다.

 

이현종 / 미 데이빗슨대 농구선수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