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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귀를 기울여요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3. 3. 1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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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6. 10

 

2군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은 적막하다. 공이 와서 미트에 꽂히는 소리. 방망이에 공이 맞는 소리. 안타를 치면 띄엄띄엄 나오는 박수소리. 2군 구장에는 팬들의 환호도 없다. 한여름에도 경기는 어김없이 오후 1시에 열린다. 뙤약볕은 그라운드의 소리를 집어삼킨다. 더 조용한 야구.

 

LG 안치용은 2002년 입단한 뒤 내내 2군에 있었다. 뒤늦게 올시즌 1군에 올라와 35경기를 치른 현재 타율 3할7푼4리를 기록 중이다. 안치용은 “이제서야 조금 적응이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실책은 없었지만 외야수비가 불안했다. 안치용은 “내내 낮경기만 치러 야간경기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관중이 가득 차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적막한 2군 야구와 1군 야구의 차이. “소리를 듣고 앞으로 뛸지, 뒤로 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도대체 감이 오질 않더”란다. 그러더니 “(정)수근이 형도 처음에는 사직구장에서 엄청 힘들었다더라”면서 씩 웃었다.

 

야구는 손으로, 발로, 눈으로 하지만 소리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1루심이 아웃과 세이프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도 소리다. 1루수 미트에 들어오는 공과 타자 주자의 발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심판은 눈을 베이스로 향하고, 귀를 미트에 열어둔다. 주자가 베이스를 밟은 게 먼저냐, 귀에 미트 소리가 들리는 게 먼저냐. 방송 카메라가 느린 화면으로 보여줘야 구분 가능한 1루 판정이 대개 정확한 이유는 역시 소리 때문이다. (그래서 1루 판정이 틀렸을 경우 심판은 더 많은 비난을 받기 일쑤다.)

 

투수들이 몸을 푸는 불펜에 지붕이 없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포수 출신의 KIA 조범현 감독은 “지붕 있는 실내에서 투수가 공을 던질 경우 소리가 울리기 때문에 포수 미트에 공이 들어가는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린다. 그럼 투수들이 자기 컨디션을 착각하기 쉽다”고 했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 투수일수록 위험이 커진다. “가끔 호쾌한 미트 소리에 홀려서 어깨를 다치는 경우도 있다”고도 했다. 두산이 몇년 전 잠실구장에 외야에 실내 불펜을 설치했다가 얼마 뒤 철거한 이유다.

 

물론 야구에서 가장 멋진 소리는, 팬들의 응원 소리다.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홈런타자 라이언 하워드가 2006시즌 MVP가 됐을 때, MLB.com은 “하워드의 홈런 비거리는 절대 자로 잴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그 홈런이 날아갈 때 터져나오는 팬들의 함성 소리로만 잴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 소리는 선수를 춤추게 한다. 팬들의 함성 때문에 외야 수비가 어렵다던 안치용은 “하지만 그 소리 때문에 절대 2군에 내려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10일, 전국 방방곡곡에선 촛불과 함께 한 국민들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귀를 막는다면, 제대로 된 캐치를 할 수가 없다. 기록원은 분명, 실책을 기록할 것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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