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인사이드 피치] 낚시광 김선우의 멀리 보기

---Inside Pitch

by econo0706 2023. 3. 21. 11:19

본문

2005. 06. 22

 

"저라고 왜 던지고 싶지 않았겠어요. 어느 누구보다 더 간절했죠."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승리 투수 자격에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남겨둔 5회 말 2사 후 마운드를 내려온 김선우에게 "한 타자만 잡으면 되는데 왜 던지지 못했느냐"고 물었던 것이 말이다. 김선우 말이 맞다. 그는 20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워싱턴 내셔널스의 경기를 보러 온 3만4474명의 관중 가운데 누구보다, 또 어느 선수보다 더 마운드에서 내려오기 싫었을 것이다. 시즌 1승, 통산 8승밖에 올리지 못한 그에게 모처럼 찾아온 승리의 기회. 그 기회를 가장 간절히 붙잡고 싶은 주인공은 당연히 김선우 자신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그는 미련없이 마운드를 내려왔다. 오른팔 근육통. 그 순간 세상이 야속했겠지만 그는 고집 부리지 않았다. 포수가 건네준 공을 한 번 쥐어보고, 트레이너가 보는 앞에서 섀도 스윙을 한 번 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그는 정말 미련없이 환하게 웃었다. "지금 나에게 1승의 의미는 크지 않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다. 내가 잘 던져서 팀이 이겼고, 그 승리를 마이너리그부터 친한 동료 트래비스 휴스가 얻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했다.

 

그 순간 조성민이 생각났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잘나가던 1998년 올스타전에 출전했다가 팔꿈치가 아픈데도 그냥 던졌던, 그래서 부상이 심해졌고 결국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조성민이. 그때 조성민은 3-3 동점이던 9회 말 선두타자 노구치를 삼진으로 잡아낸 뒤 오른 팔꿈치가 아팠다. 그는 라커룸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팔굽혀펴기 몇 번 하고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2사 만루까지 가는 힘든 승부를 펼친 끝에 이닝을 마무리했다. 부상은 악화됐고 결국 조성민의 선수 생명 전체를 갉아먹고 말았다.

 

그때 조성민이 챙기지 못했던 '여유'를 김선우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한 발짝 물러섰고, 지금보다 나중을 생각했다. 모처럼의 선발 등판에서 잘 던지고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물론 크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 지금의 만족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을 멀리 보는 지혜는 결국 김선우를 살찌울 것이다. 김선우는 낚시.독서.골프를 즐긴다. 스스로 "낚시가 아니었으면 미국 생활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의 '광'이다. 또 그날 라커에 열 권이 넘는 책을 가져다 놓았을 정도로 독서에도 열심이다. 이런 취미는 야구에 대한 집착에서 그를 벗어나게 했고, 정서적 여유를 가져다 줬다고 한다.

 

당장의 이익, 눈앞의 승리에 집착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리고 뒤늦게 그걸 후회할 때, 시간은 얼마나 야속하게 느껴지는가. 김선우의 멀리 보기. 그의 선택은 현명했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