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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타자 ‘입맛’ 돋우는 배팅볼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3. 4. 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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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15

 

두산 박종훈 2군 감독이 미국 유학 중일 때다. 1991년부터 2년간 미국의 서든코네티컷주립대에서 체육학 석사 과정을 밟은 뒤 기회가 찾아왔다. 일을 도와주던 목사님을 통해 야구 코치 제안이 들어왔다.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더블A팀인 뉴브리튼 레드삭스 코치 자리였다. 박 감독은 “깜짝 놀랄 기회였다. 단숨에 차를 몰고 찾아갔다”고 했다.

 

보스턴 루 고든 단장과의 면접. 박 감독은 “첫 질문이 뭐였는지 아냐”고 물었다. 고든 단장은 한국에서 온 박 감독에게 대뜸 말했다. “배팅볼을 던질 줄 아냐”고. 박 감독은 “그게 바로 내 전문”이라고 했단다.

 

마이너리그 팀에서 ‘배팅볼’은 코칭의 기본이었다. 감독과 투수 코치, 박 코치 이렇게 셋이서 돌아가며 20분씩 줄기차게 던졌다. “매일 20분씩 던졌으니까 150개쯤 될 것”이라고 했다. 야구에서 배팅볼은 무척이나 궂은 일이다.

 

배팅볼 투수는 가장 더울 때 마운드에 오른다. 대개 홈팀의 훈련이 오후 3시쯤 시작되는 것을 감안하면 요즘같은 날 그라운드가 최고로 달궈졌을 때 마운드에 서는 셈이다. 아무리 힘을 빼더라도 수십개를 던지고 나면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코치들이 던지거나, 선수 출신 현장 직원이 공을 던진다. 배팅볼을 던지고 난 뒤 몇몇은 화장실에 가서 점심을 게워내기도 한다.

 

배팅볼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투수와 마찬가지로 ‘제구력’. 타자들의 타격감을 유지시키는 게 목적이므로 ‘입맛에 좋은 공’을 던져야 한다. 같은 곳에 여러 개를 던질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들쭉날쭉한다면 되레 타자의 타격감을 망칠 수 있다. 그래서 박 감독은 “트레이너가 경기 전후 선수들의 몸을 마사지함으로써 경기력을 향상시킨다면, 배팅볼 투수는 공을 가지고 타자의 타격감을 마사지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팅볼은 공으로 하는 마사지다. 한 야구관계자는 “실제로 배팅볼을 잘못 던져서 코치가 되지 못한 유명 선수도 있다”고 했다.

 

15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는 올스타전 홈런 더비가 열렸다. 조시 해밀턴(텍사스)에게 공을 던져준 배팅볼 투수는 그가 고교시절 동네에서 야구를 도와준 71세의 할아버지 클레이 카운실. 초반 흔들리던 카운실의 제구는 중반부터 자리를 잡았고 해밀턴은 익숙한 그의 공을 받아쳐 16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카운실의 ‘마사지’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고, 해밀턴은 그 애정에 역대 홈런 더비 1라운드 최고기록(28개)으로 보답했다.

 

한국에도 있었다. 올스타전 홈런 더비 전문 배팅볼 투수. 2004년 부산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삼성 타자들을 상대로 공을 던진 배팅볼 투수는 삼성의 더그아웃 기록원인 배운용 과장이었다. 평소에도 배팅볼을 던져 삼성타자들에게 익숙했다. ‘비장의 카드’였지만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진갑용은 홈런 더비에서 홈런을 1개도 때려내지 못했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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