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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라운지] 승엽, 등번호를 감춰라

--이용균 야구

by econo0706 2023. 4. 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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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07. 29

 

28일 히로시마 구장. 2-6으로 뒤진 채 맞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9회초 마지막 공격은 2사 1·3루로 바뀌어 있었다. 그제서야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경기 내내 벤치를 지키던 터였다. 대기 타석에서의 연습 스윙에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볼카운트는 2-1. 히로시마 마무리 나가카와는 줄창 포크볼을 던져대고 있었다. 그때 중계화면에 한 일본팬이 나타났다. 그는 ‘李承燁 25’가 적힌 커다란 응원판을 흔들고 있었다. 표정은 초조했다. 숫자 ‘25’는 이승엽의 등번호다.

 

4구째 또다시 포크볼이 들어왔다. 이전 공 3개보다 각이 더 컸다. 이승엽은 방망이를 휘둘렀다. 간신히 공을 따라가 파울볼. 이승엽이 방망이를 휘두르기 직전 오른다리를 들었을 때, 웅크린 이승엽의 등번호는 카메라를 향해 있었다. 역시 25번.

이승엽은 삼성 시절 36번을 달았고, 지바 롯데 시절 36번을 유지했다. 2006년 초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5번을 달았다. 25번은 홈런타자의 상징이다. 이승엽이 어린 시절 동경했던 켄 그리피 주니어가 한때 달았던, 마크 맥과이어와 배리 본즈와 제이슨 지암비의 등에 있던 번호다. 이승엽은 2007년 요미우리와 4년 계약을 하며 25번을 요구했다. 25번은 이승엽의 자존심이었다.

 

볼카운트는 여전히 2-1.

 

SK 김정준 전력분석팀장과 이승엽의 타격 모습을 분석했다. 김 팀장은 4구째 파울을 설명하며 “승엽이는 저렇게 등번호가 많이 보이면 안된다”고 했다. 투수의 뒤쪽에서 잡히는 TV 화면에 노출되는 이승엽의 등번호는 좋지 않은 신호다. “저러면 오른쪽 어깨가 (홈플레이트 쪽으로) 들어가게 되고, 밸런스가 나빠진다. 타이밍도 늦다”고 설명했다.

 

나가카와의 5구째가 날아왔다. 바깥쪽 낮은 공이었지만 이승엽의 방망이는 이전처럼 허겁지겁 따라나가지 않았다. 정확히 공을 때렸고 깨끗한 중전안타가 됐다. 2타점 적시타. 이번 스윙에서 이승엽의 등번호는 숨었다. 5가 보였지만 2는 절반쯤 등 뒤에 감춰졌다. 실제 이승엽이 홈런 41개를 때렸던 2006년 홈런 장면에서는 이승엽의 등번호가 잘 보이지 않는다. 33번을 달던 시절, 뒤의 3은 보이지만, 앞의 3은 반쯤 숨었다. 27일 터뜨린 올시즌 1호 홈런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승엽이 2군에서 타격폼 변신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타격할 때 발의 위치와, 오른발을 드는 순간의 오른쪽 어깨다. 이승엽 변신의 핵심은 바로 등번호. 자신의 등번호 25번을 숨겼을 때, 이승엽은 부활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홈런타자를 상징하는 등번호 25번이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홈런이 터져나오는 것.

 

이승엽은 올림픽 참가를 위해 30일 입국한다. 이승엽은 WBC 4강 때처럼, 이번에도 25번을 단다. 베이징 오과송 구장에 섰을 때 그의 타격장면에서 등번호가 보이지 않는다면, 예전 그 홈런을 다시 볼 가능성이 높다.

 

이용균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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