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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중] 프로 첫 시즌 이야기, 그리고 잊지 못할 커리의 조언

--이현중 농구

by econo0706 2023. 4. 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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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4. 01

 

안녕하세요! 농구선수 이현중입니다.

산타크루즈 워리어스에서의 프로 첫 시즌이 끝났습니다. 12경기를 뛰었는데 짧았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즌 같아요. 오늘은 G리그에서의 첫 시즌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아쉬웠던 첫 시즌

산타크루즈 워리어스에서의 시즌은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다시 건강하게 뛸 수 있어 좋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기에 아쉬웠던 것 같아요.

첫 6경기를 치를 때만 해도 수술받았던 발이 완벽하게 5대5 게임에 적응이 안 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2경기를 쉬기도 하고, 출전 시간도 제한이 좀 있었어요.

그때는 화가 좀 났어요. 부상 때문에 오래 쉬었고, 재활도 열심히 했는데 왜 아픈 걸까?

이런 아픈 걸로 제가 100%를 못 보여주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다만 그러면서도 욕심을 내거나 무리하지 않았던 게 잘한 일 같습니다. 트레이너와 소통하면서 어떻게 몸을 만들면 좋을지 길을 찾았고, 치료에 집중했죠. 무엇보다 2경기를 쉰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회복한 뒤부터는 한 경기, 한 경기가 더 소중했죠.

덕분에 시즌이 끝나기 전에는 20분 이상 뛰고, 백투백을 소화하고도 발이 괜찮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최악으로 시즌을 끝낸 것 같진 않았어요. 경기 흐름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습니다. 또 G리그이지만, 몸싸움에서 크게 밀린 거 같지는 않아서 그동안 몸을 잘 만들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선수로서 보완할 점도 발견했고요.

▲ G리그 데뷔전 이후 첫 인터뷰에 임했던 이현중 선수 (출처 = NBA Asia/NBA G League)

 

이번 시즌은 체험판

돌이켜보면 정신없었던 첫 프로 시즌이었습니다. 적응하고 알아가는데 시간을 보냈죠. G리그가 어떤 곳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체험판 같았다고나 할까요?

산타크루즈 워리어스에 입단하고 1~2번 훈련한 뒤 바로 첫 경기에 투입됐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동료들을 모르고, 동료들도 저를 몰랐죠. 어떤 걸 잘 하는지 모르는 상태였어요. 반면에 팀은 10월부터 만들어진 상태였잖아요. 어느 정도 틀이 있고 각자의 롤이 있었죠. 그렇기에 저도 적응하고 찾아가는데 주력했어요.

처음에 제일 어색했던 건 게임데이 루틴이었어요.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항상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입장을 준비하는데, 저는 아예 춤을 못 추니까 벙쪘죠. 김효범 선생님도 영상을 보시고는 왜 이리 어색하냐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밌어졌어요. 같이 녹아들고자 했죠.

팀에 합류한 뒤 계속 경기만 이어지다 보니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오가면서 동료들과 소통을 많이 하려고 했죠. 감독, 코치님과도 대화를 나누면서 제 역할을 찾아갔어요.

 

그중 하나가 리바운드 가담이었습니다. G리그는 NBA보다는 몇 단계 아래이지만, 그래도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대학교 2~3학년 때는 부딪치면 '아우, 완전 벽이네'라고 느끼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로 느낀 선수들은 없었어요.

 

다만 공격 스타일이 달랐는데, 데이빗슨 대학은 모션 오펜스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 정해져 있었어요. 반면 산타크루즈는 프리스타일이어서 그게 달랐죠. 스팟 업 슈터로서 찬스가 오면 던지는 게 제 역할이었죠. 그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지 보니 공격과 수비에서의 리바운드 가담이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더 보탬이 되기 위해 뛰어들어가고 몸싸움을 했는데, 잘 된 것 같았습니다. 감독님께서도 너는 루키이지만 베테랑처럼 잘 플레이했다고 칭찬해주셨어요.

▲ 슈팅 하나, 자유투 하나에 집중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현중 선수 (출처 = NBA Asia/NBA G League)

슈팅 난조 속에서 찾은 교훈

아시다시피 처음 몇 경기는 슛이 정말 들어가지 않았어요. 야투 성공률이 10%대였죠. 3점슛이 처음 들어갔을 때 '아~ 이제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기가 안 풀리다 보니 슛 하나에 너무 감정을 실었던 것 같습니다. 슛이 하나 안 들어가도 잊어버리고, 다음 슛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죠. 그런 부분에서 마음가짐을 새로 한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감독님, 코치님의 조언도 힘이 됐죠. 다들 제가 슛 성공률이 안 좋을 때도 "네 슛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 곧 돌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어. 계속 던지고 움직여. 그리고 다른 걸로 우리 팀을 도와줘"라고 해주셨죠.

산타크루즈 워리어스가 제일 강조하는 부분은 퀵 디시전(quick decision)이에요. 슛 페이크 없이 슛, 패스, 드라이브를 빨리 결정해야 했죠. 정신없었어요. 훈련할 때도 5대4 세팅을 해두고, 5명이 쉴 틈 없이 판단하고 움직여야 했죠.

 

G리그에서는 제가 볼을 10초 이상 끌고 있을 기회가 없을 거예요. NBA는 더더욱 그렇겠죠.

그래서 비시즌에는 1대1 실력을 키우되,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제 공격을 해결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캐치 앤 슛은 다 넣어야 하더라고요. 그리고 수비를 잘 해야 롤 플레이어로 시간을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테픈 커리 선수의 훈련을 보고 영감을 받은 것인데, 트랜지션 상황에서도 하프코트에서 코너까지 달려가서 잡아 던지는 그런 훈련을 하고 있죠. 찰리 트레이너님께서 도와주고 있어요.

슈퍼스타는 괜히 슈퍼스타가 아니더라고요.

클리블랜드와의 홈경기는 체이스센터에서 열렸어요. 체이스센터는 시설이 어마어마했죠.

G리그와는 차이가 있었어요. G리그도 최근에는 선수들 지원이 좋아졌다고 해요. 원정에서도 각자 방을 주고요. 하지만 그래도 NBA와는 차이가 컸죠. 미국 대학과 비교해도 그렇고요. 산타크루즈 워리어스 체육관은 작기도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도 마음대로 사용 못하는 등 NBA와는 비교가 어려웠죠. 원정 비행기도 비상구 좌석은 운이 좋아야 얻는 거고요. 저보다 큰 선수들도 일반석에서 답답하게 이동했어요. G리그 디트로이트에서 코치 활동을 하셨던 김효범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그대로였죠.

▲ 롤모델 스테판 커리의 라커 앞에서 (사진 = 이현중 선수 제공)

 

체이스센터에서는 잊지 못할 경험을 했어요. 스테픈 커리 선수를 만났거든요!

연습을 하러 갔는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더라고요.

속으로 '와, 커리다!'라고 생각하며 인사를 할 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먼저 와서 제게 말을 건네주더라고요. "What's up? Mr. Lee"라고요. 발 상태는 어떤지 물어보고, 데이빗슨 대학 이야기도 했죠.

운 좋게도 저희는 연습경기도 했어요. 저랑 커리, 안드레 이궈달라, 그리고 다른 두 선수가 한 팀을 이루었는데 너무 편하더라고요. 커리가 수비 3명씩 몰고 다니니까 저는 굉장히 편했죠.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커리가 리바운드를 잡아 제게 주었는데, 저는 그걸 이궈달라 선수에게 앨리웁 패스를 띄워줬어요. 이궈달라가 덩크로 마무리했죠. 친구들에게 그걸 자랑하니까 NBA 2K 이야기하냐고 하더군요. 하하.

커리의 훈련도 봤어요. 정말 인상적이었던 건 훈련에 임하는 태도였어요.

연습인데도 실전보다 더 빠르게 하더라고요. 설렁설렁하는 게 아니라 죽을 듯이 뛰었죠. 그런 걸 보고 정말 놀랐어요. 게임 페이스, 아니 게임 페이스보다도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커리의 어깨랑 코어 근육도 놀라웠어요. '와, 이 정도라고?'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쩌면 슈팅이 너무 좋다보니 그런 신체 단련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지나쳤던 것 같아요.

슈퍼스타는 괜히 슈퍼스타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갖게 됐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그렇게 쏟아부으니까요. 커리 같은 슈퍼스타들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저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영감을 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운동이 끝난 뒤에도 저희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많은 선수들은 소통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만 하는데, 제일 기본은 수비와 선수들과의 소통이다. G리그 선수들이 여기(NBA) 오는 경로는 대부분 10일 계약이나 투웨이 계약이라 사실, 본인들이 어느 위치에 있을 지 모를 수 있다. 그럴수록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오버 커뮤니케이션은 나쁜 게 아니다. 그러니 과감하게 소리 지르고 해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내가 팀에 더 녹아들기 위해, 팀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소통해야 한다. 그런 건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잊지 못할 말이었습니다.

▲ 3점슛 감각만큼 중요한 동료와의 소통과 스킨십 (출처 = NBA Asia/NBA G League)

 

다시 준비 모드로

텍사스와의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저희의 2022-2023시즌도 끝났습니다. 바로 다음날 해산했어요.

한 달간의 첫 프로선수 생활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G리그는 월급으로 주던데, 한 달 치 월급이 입금되었어요. KBL 신인 선수들보다는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하하.

마지막 날이 토요일이었고, 날씨도 좋아서 일요일 하루 정도는 쉬다가 올까도 생각했는데, 제가 즐길 처지는 아닌 거 같았어요.

그래서 바로 6시간 반을 운전해서 얼바인으로 왔어요.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낼 계획이에요. 며칠 뒤에 아파트로 이사해서 누나랑 살게 되어요. 다행히 발 재활하는 곳과 가까운 곳이에요.

찰리 트레이너님과는 오늘(3월 28일)부터 훈련을 시작했답니다. 이제 서머리그를 노려야죠.

한국은 당분간 갈 계획이 없어요. 비행기 티켓도 비싸고, 지금은 놀기보다는 저보다 잘 하는 선수들과 부딪쳐야 빨리 늘 거 같아요. 날씨도 좋고, 코트도 10분 거리에 어디든 있으니 훈련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빌 더피 에이전트님과 이후 방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어요.

제가 한참 슛이 안 들어갈 무렵에 산타크루즈에 오셔서 점심 식사를 함께 했는데, "너는 똑똑하게 플레이하니까, 운동능력으로 승부 보지 말고 영리하게 플레이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타이밍을 뺏는 농구를 해야 한다. 슛은 언제든 들어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때 이후로 경기력이 올라온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못했던 경기만 기억에 남아요. 경기 끝나고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왔을 때 느낀 적막함도 잊을 수 없을 거 같아요. 무엇보다 부진에 대한 위로를 들을 때 화가 많이 났었어요. 그럴 때면 늘 운동에 대한 의지가 타올랐죠. 바로 감독님께 이야기해서 슈팅 훈련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 과정들이 있어서 뒤늦게라도 자신감을 찾은 것 같습니다.

다만 저를 보러 멀리까지 와주신 팬분들께 정말 죄송하고 감사해요.

LA에서도 오시고, 심지어 한국에서도 오셔서 응원해 주셨어요. 더 좋은 경기를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했어요. 그래도 그분들을 보면서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주셨던 김효범 선생님께도 감사드려요. 제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에 대해 계속 피드백을 해주셨어요. 경기를 보고, 찬스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말씀해주셨는데 그런 것들을 잘 반영했던 것 같아요. 부진해서 다운되어 있을 때는 "그렇게 다운되어있다고 좋아지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씀도 해주셨죠.

(이)대성이 형과 (최)준용이 형도 매일 챙겨본다며 힘을 많이 주셨어요. 수비 드릴 때문에 대성이 형에게 연락을 드렸는데, 훈련 방법이 담긴 영상도 보내주시는 등 다 힘이 돼죠.

한국에서 응원과 격려 보내주신 모든 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다시 건강히 코트에 서서 무사히 시즌을 마친 만큼, 계속해서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이현중 /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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