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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뒤집기] 한국 스포츠 종목별 발전사 -야구 (16)

---[스포츠 種目別 發展史]

by econo0706 2023. 5. 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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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30

 

1980년 신군부의 등장으로 정국에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친 이듬해인 1981년 봄 정부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부 스포츠 종목의 프로화 문제가 거론됐다. 이후 가장 먼저 야구의 프로화 작업이 결심을 맺어 1981년 12월 11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프로 원년 6개 구단 대표들이 모여 4성 장군 출신의 서종철 씨를 초대 총재로 추대하고 사단법인 ‘한국프로야구위원회’를 창립했다. 그때는 KBO(Korea Baseball Organization)의 우리말 표기에 프로가 들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서종철 총재는 요즘도 프로 야구 관련 기사에 이따금 나오는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꿈을 키워 주며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밝고 건강한 여가 선용을 약속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취임사를 읽었다. 이 취임사는 1970년대 인기 스포츠 전문지인 야구 기자 출신인 김창웅 KBO 초대 홍보실장이 작성했다.


한국프로야구위원회 창립 이듬해인 1982년 3월 27일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에서 MBC 청룡-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으로 국내 프로 야구가 출범했다.


프로 야구가 시작한 그해 최동원 등 우수 선수들의 프로 진출을 1년 유보해 최고의 전력을 꾸린 한국은 1982년 9월 서울과 인천에서 열린 제 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5-2로 꺾는 등 8승1패로 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우승했다. 선수권이 걸린 세계 대회에서 단체 구기 종목에서 우승한 건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 이어 야구가 두 번째다.프로화 이후 야구는 더욱 경쟁력을 갖췄고 2015년 현재 국내 프로 야구는 10개 구단이 팀당 144경기, 모두 720경기를 치르는 세계적인 리그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축구 월드컵 격인 WBC 4강에 오르다


2006년 3월에 열린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 야구 최강자를 뽑는 대회였다. 미국은 이 대회가 열리기 전 올림픽과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 대회에 자국 야구의 최고봉인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보내지 않았다. 이는 2008년 베이징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야구가 사라진 까닭이기도 한다.

 

▲ 한국 소식을 상세히 보도한 WBC 홈페이지


메이저리그가 주도한 WBC는 메이저리거들이 각자 조국의 대표로 출전해 축구의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야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세계 최고의 대회가 됐다.한국은 제 1회 WBC에서 16개 출전국 가운데 가장 좋은 6승 1패의 성적을 올리고도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대신 4승3패의 일본과 5승2패의 쿠바가 결승에서 맞붙었다. 해괴한 경기 방식의 결과였다. 한국은 3월 19일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서 벌어진 WBC 준결승에서 경기 후반 중간 계투진이 무너지며 일본에 0-6으로 져 첫 대회 4강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의 선전은 아시아 예선부터 시작됐다. 도쿄돔에서 벌어진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은 난적 대만과 중국을 각각 2-0, 10-1로 물리치고 일본과 맞붙었다. 한국은 선발 김선우가 초반 2실점해 고전했다. 그러나 봉중근~배영수~구대성~박찬호가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버티는 가운데 5회 초 이병규의 희생플라이로 1-2로 따라붙은 뒤 8회 초 1사 1루에서 이승엽의 홈런으로 3-2 역전승을 거두고 미국에서 벌어진 본선에 올랐다.한국은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라운드 1조 첫 경기에서 이승엽의 선제 2점 홈런을 서재응~구대성~정대현~봉중근~박찬호의 이어 던지기로 끝까지 잘 지켜 멕시코를 2-1로 물리쳤다.

 

이승엽은 1회 말 1사 후 이종범이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간 뒤 볼카운트 3-2에서 멕시코 선발 로드리고 로페스의 6구째를 통타해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결승 홈런을 기록했다.한국은 미국과 2차전에서 1회 말 이승엽의 선제 솔로 홈런과 4회 말 대타 최희섭의 3점 홈런 등 10안타를 효과적으로 엮어 7-3으로 이겼다. 선발 손민한에 이어 전병두~김병현~구대성~정대현~오승환으로 이어진 한국 마운드는 미국의 공격을 9안타(1홈런)로 틀어막았다. 이 땅에 야구가 들어온 지 100여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대회에서 야구의 본고장을 자부하는 미국을 꺾은 것이다.

 

2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는 이종범의 적시타로 일본을 2-1로 물리쳤다. 한국은 8회 초 공격 1사 후 김민재가 볼넷을 고른 뒤 이병규의 중전 안타 때 3루까지 달려 2, 3루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중견수 긴조 다쓰히코의 송구는 타이밍으로는 아웃이었으나 3루수 이마에 도시아키가 공을 흘려 세이프가 선언됐다. 일본은 스기우치 도시야를 내리고 후지카와 규지를 마운드에 세웠으나 이종범에게 좌중간 외야를 완전히 가르는 2타점 2루타를 얻어맞았다. 일본은 9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 선두 타자 니시오카 쓰요시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날려 영패를 면했다.

 

한국은 파죽의 6연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올랐으나 상대 조가 아닌 같은 조 2위와 준결승을 치르는 희한한 대회 방식에 따라 아시아 예선을 포함해 일본과 3번째 경기를 치르게 됐고 결국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출전한 대회에서 한국은 당당히 4강에 들었다. 한국은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이 대회는 프로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은 아마추어 선수들의 무대였고 강호 쿠바가 정치적인 이유로 출전하지 않은 가운데 거둔 우승이었다.

 

신명철 기자 smc@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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